
생각해 보면 반도체 공정과 AI 기술의 관계는 늘 “더 작게, 더 빠르게”라는 말로 정리되어 왔다. 미세공정이 발전하면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집적할 수 있고, 그 결과 연산 성능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이 논리는 오랫동안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이 문장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이게 된다.
미세공정이 성능 향상을 이끌어왔던 방식
한동안 반도체 산업은 비교적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였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곧 성능 향상과 전력 효율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 흐름은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AI 연산이 늘어나면서 이 구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신경망 연산은 기본적으로 많은 계산을 반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유리했다. 그래서 미세공정은 AI 성능을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처럼 여겨졌다. 이 시점까지는 큰 의문이 없었다.
다만 이 관계가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을지는 그때도 명확하지 않았다. 공정이 작아질수록 비용은 급격히 증가했고, 물리적 한계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AI 성능과 미세공정의 거리
AI 성능이 반드시 미세공정의 크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같은 공정에서도 설계 방식, 아키텍처, 메모리 접근 구조에 따라 성능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이 사실은 미세공정 중심 사고에 균열을 만든다.
실제로 AI 칩 설계에서는 연산 유닛보다 데이터 이동이 병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공정을 더 줄인다고 해서 체감 성능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설계 최적화나 구조 변경이 더 큰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미세공정이 곧 성능”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흔들린다.
이런 현상은 AI 기술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작정 하드웨어 성능만 끌어올리는 방식이 점점 비효율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 한계가 AI 구조에 미치는 영향
미세공정이 더 이상 예전만큼 빠르게 진전되지 않으면서, AI 기술 역시 영향을 받는다. 공정이 멈춘 자리를 설계와 구조가 메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라기보다, 방향 전환에 가깝다.
예를 들어, 연산을 줄이고 데이터 이동을 최소화하는 구조가 더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모델 경량화, 연산 분할, 메모리 구조 재설계 같은 접근이 강조된다. 이는 공정 발전이 느려질수록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설계 복잡성은 증가하고, 개발 비용 역시 만만치 않게 올라간다. 그래서 공정 한계는 AI 기술 발전의 제약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강제하는 요인이 된다.
성능 향상의 기준이 바뀌는 지점
과거에는 성능 향상을 비교적 단순한 수치로 표현할 수 있었다. 더 빠른 연산, 더 높은 처리량 같은 지표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확산되면서 성능의 기준은 점점 애매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최고 성능보다 안정성이 더 중요해지고, 어떤 경우에는 전력 효율이나 지연 시간이 핵심이 된다. 이 변화는 공정 기술에도 영향을 준다. 가장 앞선 미세공정을 쓰지 않더라도, 목적에 맞는 공정과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흐름을 보면, 반도체 공정은 더 이상 AI 기술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존재라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한계 이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미세공정의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하지만 한계라는 말이 곧 정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AI 기술은 이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모델 구조를 바꾸고, 연산 방식을 조정하며, 하드웨어 제약을 전제로 설계를 다시 짜는 시도가 계속된다. 이 과정은 깔끔하지 않고, 시행착오도 많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도체 공정과 AI 기술의 관계를 단순히 “미세공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로만 바라보는 것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공정 한계 이후 어떤 선택들이 가능해지는지를 함께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반도체 공정과 AI 기술은 여전히 깊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미세공정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성능 향상의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공정의 한계는 AI 기술에 제약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구조와 접근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AI 성능은 단순한 공정 수치보다 훨씬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애매한 상태 자체가 지금 기술 흐름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